후기 예언서 중 이사야, 에제키엘과 함께 분량이 많아 대예언서로 분류.
1. 저자 및 집필시기
예레미야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 뼈대.
예레미야서는 제자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예언을 받아 적은 것(36,4).
복잡한 편집과정 – 예레미야의 예언이 참된 하느님의 말씀임을 깨달은
바빌론 유배 때 예레미야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들이 그의 말을 수집해서 덧붙였다.
그래서 예레미야서는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지 못하고 왔다갔다하는 부분이 꽤 있다.
예레미야가 활동한 시대에 유다의 운명은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로 회개를 호소하며 하느님의 심판을 알렸지만,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어 처참하게 멸망당하는 조국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아픔을 겪는다. 뿐만 아니라 조국의 배반자, 거짓 예언자로 몰려 여러 차례 죽을 위험을 겪는 등 예언자로서 개인적인 고통도 심하게 받았다. 그래서 그를 눈물의 예언자’, 수난의 예언자’라 부르기도 한다.
2. 집필동기
요시아 왕이 죽은 다음 유다는 동쪽의 신흥 강대국 바빌론의 압력을 강하게 받았다.
남쪽에는 비록 위축되긴 했지만 여전히 강대국인 이집트가 있었다.
유다는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았지만,
왕과 대신들은 이집트에 빌붙어 바빌론과 싸우려고 하였다.
이러한 혼란기에 예레미야는 먼저 우상을 숭배하고 하느님의 말씀과 법을 무시하는
유다인들의 생활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하느님의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예언.
아울러 그는 성전과 시온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있기에 결코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거짓 믿음과 군사외교적인 정책으로 살 길을 찾으려는 지도층의 자세를 비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고 그분의 말씀을 깨어 들으며 그대로 실천하는 삶이고,
이것이 궁극적인 살 길임을 알려준다.
때로는 바빌론에 항복하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기억하시고
그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어 새 공동체를 이루시는 희망 찬 미래가 펼쳐진다고 호소.
3.예레미야
이름의 뜻: “야훼께서 던지다, 급히 보내다”
1) 출생 : 아나톳(벤야민 땅)
2) 소명시기 : 요시아 치세 13년(BC 640-609년)
출생 : BC 650년
소명 : BC 626/627년 (20대 초반에 부르심을 받음)
예레 1,6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 당시 공적으로 활동하는 나이 30세
다윗 : 유다왕 즉위 – 30세(2사무 5,4)
예수 : 공생활 (루카 3,24)
3) 활동기간 : BC 626-587년(약 40년간)
4. 예레미야서의 구조
– 표제(1,1-3)
–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신탁(1,4-25,13)
– 이방 제국가에 대한 신탁(25,14-38;46-51)
– 구원의 약속(26-35)
– 예레미야의 전기(36-45)
– 부록 : 예루살렘의 멸망(52)
5. 내용
가. 소명이야기(1,4-19)
4-10 소명
11-16 2개의 환시
17-19 예레미야의 파견
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경고
1) 광야시절의 하느님 백성 (2,1-3): 첫사랑/젊은 시절의 순정/ 신혼 Only you!
2) 남왕국 유다 백성의 삶(2,4-13) : 생명수의 원천(하느님)을 저버림
2,5 헛것 = 우상숭배(10,1-16)
다. 예레 10,1-16 – 우상숭배
1-2 : 권고
우상
3-5 : 생명 없는 것
8-9 : 장인의 작품, 솜씨 – 인간이 만든 것
14-15 : 숨결이 없다, 함께 사라짐
하느님
6-7 : 위대, 엄위를 떨치심, 민족들의 임금
10-13 : 진리의 하느님,
살아계신 하느님, 영원한 임금 – 세계를 초월해서 살아계시는 하느님
성조들의 하느님,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
창조주 하느님 – 생명수의 원천
16 창조주, 이스라엘 선택 → 만군의 하느님
라. 예레미야의 고백록(5가지)
1) 첫 번째 고백(예레 11,18-12,6) – 악인들의 번영
하느님은 그들 실존의 표면에는 자리하시나 그들 존재의 깊은 곳에는 계시지 못한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는 확신을 품고 있기에 마음 속 깊이 하느님의 시선에 자신을 맡긴다. 예언 사명 자체가 야기하는 고통을 받아들이기를 하느님께서 요구하고 계신다.
2) 두 번째 고백(예레 15,10-21) – 내적 투쟁
예레미야의 마음은 하느님 자신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번민과 의혹으로 가득 차 있기에 신중성을 다 잃어버린 상태이다. – 소명적 위기(예레 15,10-11.15-21)
예언자는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에 이르며(욥 3,3-26 참조), 어머니를 비난함으로써 잉태시부터 자신을 택하신(예레 1,5) 하느님을 비난한다.
예레미야가 고통스러워하는 점은 자신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는 사실, 선을 위해 하느님을 섬기고 불행과 비탄의 시기에 그분께 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화의 인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의 회답은 회개에 대한 호소이다(19절). 파견된 자는 그를 파견하신 분보다 더 위대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의 부르심을 상존시키시며 예언자가 믿음으로 응답하기를 기대하신다. 하느님은 당신의 대변인인 사람에게 일종의 정화작업을 요구하신다. – 예언소명에 대한 진정한 갱신을 말할 수 있다(예레 1,17-19 참조).
하느님은 예언자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십자가를 치워주시지 않고 다만 이 십자가가 예언직의 일부임을 점진적으로 일깨워 주신다.
3) 세 번째 고백(예레 17,12-18) 예언자의 외침
예레 17,14-18절은 병자의 기도처럼 시작되는 탄원 기도이다.
본문은 “주님의 말씀이 어디 있나? 내려와 보시라지!”(15절)
예언자는 “재앙의 날” 예고를 결코 원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오직 자신이 부여받은 사명에 순명하기 위해서였음에 대한 증인으로 하느님을 내세운다.
4) 네 번째 고백(예레 18,19-23) – 예언자의 외침
21-23절은 반항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의 진정한 저주 외침 – 예레미야가 개인적 복수를 원함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을 수호하고자 한다
5) 다섯 번째 고백(예레 20,7-18) – 신앙의 투쟁
11절은 예언자의 유일한 희망인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들려준다.
하느님께서 기나긴 수습기간을 통하여 예레미야에게 건네주신 유일한 응답은 훗날 성 바울로에게 선사하신 응답과 같으리라: “내 은총은 네게 족하다”(2코린 12,9).
마. 예언자의 상징적 행위
1. 숨겨지고 망가진 허리띠(예레 13,1-11)
2. 옹기장이 집에서의 예레미야(예레 18,1-12)
6절 옹기장이 손안에 있는 질흙처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도 내 손안에서 그러하리라
새 계약(예레 20-35장)
1) 유다의 왕과 예언자의 운명(예레 20,1-24,10)
하느님이 세워주시는 참목자 – 주님은 우리의 정의 (예레23,6))
예레미야 –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심판을 촉구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거짓 예언자로 몰아 때리고 가둠
당시의 사제와 예언자들 – 유다에 별탈이 없으리라고 선포
백성들은 이들의 말을 환영
하느님의 심판 예고 –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긴, 시드키야
–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가난한 자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악행을 회개하지 않는 탓.
* 임금이 지켜야 할 규정 – 신명 17,14-20
다윗 전통 왕손을 일으킬 메시아가 올 것이며
그는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펼 희망의 복음 선포.
2) 참예언자 예레미야(예레 25,1-29,32)
거짓 예언자 (예레 23,9-40; 27-29장)
북왕국 바알 예언자
예루살렘 예언자 – 종교적, 윤리적 탈선
25,1-14 : 예레미야가 유배 이전까지 한 예언의 요약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을 전하다 살해당한 예언자(26,20) – 우리야
* 유다의 죄악에 대한 심판과 함께 이스라엘은 70년을 종살이도 밝히셔서, 당신의 구원계획이 계속 될 것임을 알려주신다.
유다의 지도자나 백성 – 예레미야가 이십삼 년(25,3)을 회개 촉구,
그렇지 않으면”(26,4) 재앙을 내리겠다고 거듭 경고했으나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느님은 재앙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오직 우리의 회개만을 기뻐하시고 기다리고 계실 뿐이다
3) 하나니야가 거짓 예언(예레 28,1-30,24)
상징행동 – 27장
멍에를 매고 나타남 – 하나니아가 멍에를 부숨(28,10)
예레미야가 포로들에게 편지를 띄우고 이스라엘과 유다가 70년만에 회복될 것을 알린다.
4) 유다의 회복(예레 30,1-35,19)
예레 30-33장: ‘위로의 책’ 또는 ‘구원신탁’.
하느님께서는 유다의 죄를 법대로 벌하시지만,
그 고난의 때를 겪은 다음에는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심을 이사야와 함께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일러 준다.
“나는 한번도 잊은 일이 없었다”(31,20).
근위대 울 안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가 땅을 사서 옹기그릇에 넣어 봉인한 것:
하느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
바.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예레 36-52장)
이스라엘의 멸망 – 성벽은 뚫리고(예레 36,1-45,5)
“내가 온갖 재앙을 내리기로 하였다는 말을 듣고 유다 가문이 그 못된 생활태도를 고칠지 아느냐?”(36,3)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왕은 “그 말씀을 다 듣고 나서도 겁을 내지 않았고 옷을 찢지도 않았다”(36,24). 오히려 예레미야와 서기 바룩을 잡아오라고 지시한다.
여호야킴의 아들 여고니야(여호야긴)는 즉위한 지 몇 달이 안돼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여호아하즈의 동생인 치드키야가 새 왕으로 추대.
치드키야도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바빌론에 대항.
바빌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말한 예레미야는 민족배반자로 몰려 구덩이에 갇혀 죽을 뻔 하다가 간신히 목숨만 구한 채 갇혀 지내게 된다.
치드키야 11년 4월 (기원전 587년 7월)- 예루살렘은 함락(유다 멸망).
주님께서 이십 여 년 이상 타일러주신 말씀을 듣지 않은 채 파멸의 길을 간 것이다.
민족의 비극을 목격한 예레미야는 바빌론이 세운 지도자 게달리야가 암살당한 뒤,
요하난 일파에 끌려 이집트로 끌려갔다.
* 하느님은 만국의 운명을 결정하시니(예레 46,1-51,64)
하느님께서는 만군의 주님으로 만백성의 운명을 결정하신다(46,18; 51,57-58)
불레셋족, 모압,암몬, 에돔, 다마스커스, 아랍 부족들, 엘람 등 주변 민족들의 몰락을 예언.
마지막으로 당시 최강대국 바빌론 역시 다른 나라에 의해 멸망당하리라.
한 때 바빌론은 “야훼의 손에 들린 금술잔, 무기, 망치”(51,7.20)로 쓰였으나, 이제 “벌을 면할 길 없는 바빌론의 죄가 하늘에 닿았고 구름에 미쳤기”(51,9) 때문이다. 하느님은 뭇 민족의 왕이십니다.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 할지라도 그분의 손을 벗어날 수 없다. 멸망은 국가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지켜 약한 이(나라)를 얼마나 돌보는가에 달려 있다.
* 하느님의 말씀은 이루어지고(예레 52,1-34)
마지막 대목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왕과 사제와 기술자 등 지도층은 바빌론으로 끌려 갔다. 이집트 등 주변 각 나라로 흩어져 간 사람들도 많았다. 유대인들의 흩어짐(디아스포라)이 본격적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 바빌론 유배는 유대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자 하느님께 돌아온 위대한 각성의 시기였다. 끝모를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새 삶을 가꾼 것이다.
라. 예레미야의 고백록(5가지)
1) 첫 번째 고백(예레 11,18-12,6) – 악인들의 번영
하느님은 그들 실존의 표면에는 자리하시나 그들 존재의 깊은 곳에는 계시지 못한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는 확신을 품고 있기에 마음 속 깊이 하느님의 시선에 자신을 맡긴다. 예언 사명 자체가 야기하는 고통을 받아들이기를 하느님께서 요구하고 계신다.
2) 두 번째 고백(예레 15,10-21) – 내적 투쟁
예레미야의 마음은 하느님 자신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번민과 의혹으로 가득 차 있기에 신중성을 다 잃어버린 상태이다. – 소명적 위기(예레 15,10-11.15-21)
예언자는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에 이르며(욥 3,3-26 참조), 어머니를 비난함으로써 잉태시부터 자신을 택하신(예레 1,5) 하느님을 비난한다.
예레미야가 고통스러워하는 점은 자신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는 사실, 선을 위해 하느님을 섬기고 불행과 비탄의 시기에 그분께 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화의 인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의 회답은 회개에 대한 호소이다(19절). 파견된 자는 그를 파견하신 분보다 더 위대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의 부르심을 상존시키시며 예언자가 믿음으로 응답하기를 기대하신다. 하느님은 당신의 대변인인 사람에게 일종의 정화작업을 요구하신다. – 예언소명에 대한 진정한 갱신을 말할 수 있다(예레 1,17-19 참조).
하느님은 예언자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십자가를 치워주시지 않고 다만 이 십자가가 예언직의 일부임을 점진적으로 일깨워 주신다.
3) 세 번째 고백(예레 17,12-18) 예언자의 외침
예레 17,14-18절은 병자의 기도처럼 시작되는 탄원 기도이다.
본문은 “주님의 말씀이 어디 있나? 내려와 보시라지!”(15절)
예언자는 “재앙의 날” 예고를 결코 원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오직 자신이 부여받은 사명에 순명하기 위해서였음에 대한 증인으로 하느님을 내세운다.
4) 네 번째 고백(예레 18,19-23) – 예언자의 외침
21-23절은 반항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의 진정한 저주 외침 – 예레미야가 개인적 복수를 원함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을 수호하고자 한다
5) 다섯 번째 고백(예레 20,7-18) – 신앙의 투쟁
11절은 예언자의 유일한 희망인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들려준다.
하느님께서 기나긴 수습기간을 통하여 예레미야에게 건네주신 유일한 응답은 훗날 성 바울로에게 선사하신 응답과 같으리라: “내 은총은 네게 족하다”(2코린 12,9).
마. 예언자의 상징적 행위
1. 숨겨지고 망가진 허리띠(예레 13,1-11)
2. 옹기장이 집에서의 예레미야(예레 18,1-12)
6절 옹기장이 손안에 있는 질흙처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도 내 손안에서 그러하리라
새 계약(예레 20-35장)
1) 유다의 왕과 예언자의 운명(예레 20,1-24,10)
하느님이 세워주시는 참목자 – 주님은 우리의 정의 (예레23,6))
예레미야 –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심판을 촉구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거짓 예언자로 몰아 때리고 가둠
당시의 사제와 예언자들 – 유다에 별탈이 없으리라고 선포
백성들은 이들의 말을 환영
하느님의 심판 예고 –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긴, 시드키야
–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가난한 자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악행을 회개하지 않는 탓.
* 임금이 지켜야 할 규정 – 신명 17,14-20
다윗 전통 왕손을 일으킬 메시아가 올 것이며 그는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펼 희망의 복음 선포.
2) 참예언자 예레미야(예레 25,1-29,32)
거짓 예언자 (예레 23,9-40; 27-29장)
북왕국 바알 예언자
예루살렘 예언자 – 종교적, 윤리적 탈선
25,1-14 : 예레미야가 유배 이전까지 한 예언의 요약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을 전하다 살해당한 예언자(26,20) – 우리야
* 유다의 죄악에 대한 심판과 함께 이스라엘은 70년을 종살이도 밝히셔서, 당신의 구원계획이 계속 될 것임을 알려주신다.
유다의 지도자나 백성 – 예레미야가 이십삼 년(25,3)을 회개 촉구,
그렇지 않으면”(26,4) 재앙을 내리겠다고 거듭 경고했으나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느님은 재앙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오직 우리의 회개만을 기뻐하시고 기다리고 계실 뿐이다
3) 하나니야가 거짓 예언(예레 28,1-30,24)
상징행동 – 27장
멍에를 매고 나타남 – 하나니아가 멍에를 부숨(28,10)
예레미야가 포로들에게 편지를 띄우고 이스라엘과 유다가 70년만에 회복될 것을 알린다.
4) 유다의 회복(예레 30,1-35,19)
예레 30-33장: ‘위로의 책’ 또는 ‘구원신탁’.
하느님께서는 유다의 죄를 법대로 벌하시지만,
그 고난의 때를 겪은 다음에는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심을 이사야와 함께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일러 준다.
“나는 한번도 잊은 일이 없었다”(31,20).
근위대 울 안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가 땅을 사서 옹기그릇에 넣어 봉인한 것:
하느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
바.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예레 36-52장)
이스라엘의 멸망 – 성벽은 뚫리고(예레 36,1-45,5)
“내가 온갖 재앙을 내리기로 하였다는 말을 듣고 유다 가문이 그 못된 생활태도를 고칠지 아느냐?”(36,3)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왕은 “그 말씀을 다 듣고 나서도 겁을 내지 않았고 옷을 찢지도 않았다”(36,24). 오히려 예레미야와 서기 바룩을 잡아오라고 지시한다.
여호야킴의 아들 여고니야(여호야긴)는 즉위한 지 몇 달이 안돼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여호아하즈의 동생인 치드키야가 새 왕으로 추대.
치드키야도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바빌론에 대항.
바빌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말한 예레미야는 민족배반자로 몰려 구덩이에 갇혀 죽을 뻔 하다가 간신히 목숨만 구한 채 갇혀 지내게 된다.
치드키야 11년 4월 (기원전 587년 7월)- 예루살렘은 함락(유다 멸망).
주님께서 이십 여 년 이상 타일러주신 말씀을 듣지 않은 채 파멸의 길을 간 것이다.
민족의 비극을 목격한 예레미야는 바빌론이 세운 지도자 게달리야가 암살당한 뒤,
요하난 일파에 끌려 이집트로 끌려갔다.
* 하느님은 만국의 운명을 결정하시니(예레 46,1-51,64)
하느님께서는 만군의 주님으로 만백성의 운명을 결정하신다(46,18; 51,57-58)
불레셋족, 모압,암몬, 에돔, 다마스커스, 아랍 부족들, 엘람 등 주변 민족들의 몰락을 예언.
마지막으로 당시 최강대국 바빌론 역시 다른 나라에 의해 멸망당하리라.
한 때 바빌론은 “야훼의 손에 들린 금술잔, 무기, 망치”(51,7.20)로 쓰였으나, 이제 “벌을 면할 길 없는 바빌론의 죄가 하늘에 닿았고 구름에 미쳤기”(51,9) 때문이다. 하느님은 뭇 민족의 왕이십니다.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 할지라도 그분의 손을 벗어날 수 없다. 멸망은 국가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지켜 약한 이(나라)를 얼마나 돌보는가에 달려 있다.
* 하느님의 말씀은 이루어지고(예레 52,1-34)
마지막 대목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왕과 사제와 기술자 등 지도층은 바빌론으로 끌려 갔다. 이집트 등 주변 각 나라로 흩어져 간 사람들도 많았다. 유대인들의 흩어짐(디아스포라)이 본격적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 바빌론 유배는 유대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자 하느님께 돌아온 위대한 각성의 시기였다. 끝모를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새 삶을 가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