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바니야 : ‘주님이 숨겨 주다’ 또는 ‘피신시켜 주다’라는 뜻
온 세상에 심판을 내린다 해도, 당신을 믿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소중히 여겨 보호하신다
BC 8세기에 활약했던 이사야나 미카의 예언 전통을 이어 받고 있다
▶ 시대 배경 :
예언자 스바니아의 활동시기는 남부 유다 왕국의 요시아 임금의 통치시기(BC 639-609)를 전후로 한다. 여덟 살밖에 안된 요시아가(2열왕 22,1) 임금좌에 오른 유다 왕국에서는 이미 종교 혼합주의(다신교)와 우상숭배가 널리 퍼져 있었다. BC 622년경 예루살렘 성전 수리 중에 율법서(신명기 법전)가 발견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요시아 임금은 이 율법서 발견을 계기로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이는 유다 사회에 만연된 불의 및 우상숭배를 근절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개선하려는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바니야는 성전 주위에 머물면서 심판을 예고하고 동시에 열심히 살려는 이들을 격려하였다(1,7-9;3,5).
▶ 집필시기
스바니야는 요시아 임금(BC 640-609)이 다스리던 시절에 예언자로 활동했다.
내용상으로도 신명기적 특성을 많이 보인다.
▶ 집필동기
BC 8세기에 히즈키야(BC 715-687)는 산당들을 철거하고 석상들을 부수는 등 주님 종교를 바로 세우려는 일련의 개혁을 했지만, 이러한 개혁의 움직임은 히즈키야의 후임자인 므나쎄(BC 687-642)와 아몬(BC 642-640) 임금이 혼합주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수포로 돌아갔다.
BC 687년에 권좌에 오른 므나쎄 임금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 아시리아 제국 신들의 제단을 세우고 인접 국가들의 종교를 받아들여 갖가지 우상을 섬기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스바니야는 하느님께서 유다 왕국이든 주변 국가든 거만을 떨며 흥청거리는 자는 모두 쓸어 버리겠지만, 하느님의 법대로 살면서 겸손하게 사는 사람은 화를 면하리라고 선포한다.
▶ 구조와 내용 ,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서 등의 예언서들과 같은 구조.
①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예언(1,2-2,3)
무엇보다도 유다 왕국에 두루 퍼져있던 가나안 종교 바알 신 숭배와 종교 혼합주의를 단죄한다. “지붕 위에서 하늘의 군대를 경배하는 자들, 주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맹세하면서도 밀콤[암몬인들의 신]을 두고 맹세하는 자들, 주님을 찾지도 않고 주님에게 문의하지도 않는 자들을 나는 없애버리리라.”(1,5-6)
스바니야는 이제 주님의 날이 다가왔다고 선언합니다. 주님의 날은 주님께서 당신 자신이 누구신지를 극적으로 보여주시는 날, 악인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날입니다.
“주님의 위대한 날이 가까웠다……. 그 날은 분노의 날, 환난과 고난의 날, 파멸과 파괴의 날, 어둠과 암흑의 날, 구름과 먹구름의 날이다.”(1,14-15)
② 이방국가에 대한 신탁(神託)(2,4-15) : ‘남은 자’에 대한 언급
스바니야는 의로움뿐 아니라 겸손을 추구하라고 외친다.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2,3)
스바니야는 겸손함이 하느님과 나를, 나아가 이웃과 나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끈이요 구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본다.
③ 예루살렘과 이방국가에 대한 고발(3,1-8)
우상숭배는 온 나라를 부패하게 만든다. 임금을 따라 신하들, 지도자들이 온통 부정과 부패에 빠져들게 된다. “예루살렘 안에 있는 대신들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들, 그 판관들은 저녁 이리떼,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예언자들은 허풍쟁이,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사제들은 거룩한 것을 더럽히고 율법을 짓밟는다.”(3,3-4)
④ 약속(3,9-20) : 이교 백성들의 회심에서 흩어진 백성의 귀환이라는 주제로 넘어간다.
▶ 메시지 : 스바니야는 죄악이 교만에서 연유한다고 규정하고(2,10-15. 3,11), 그 죄악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밀어닥칠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그 재앙이란 죄악과 원수의 침공보다 앞으로 다가올 하느님의 엄중한 처벌이다.
‘주님의 날’에 벌어진 비극의 폭을 아모스보다 훨씬 넓게 확대시켰다. 소수의 ‘남은 자’에게 희망을 걸고 가난에 대한 사상이 점차 깊이 있게 전개되고 있다.
성서에서는 처음으로 청빈을 가리키는 용어 ‘아나빔’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정신적인 가난이다. “주님의 날”은 단순히 심판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주님의 날”은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날이며, 백성들이 정화되고 새롭게 되어 하느님께 돌아오는 날인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전쟁이 없는 평화 속에 축복의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