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대표적인 묵시문학 작품.
묵시문학 : B.C 200년부터 A.D.100년 사이에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쓰여졌던 문학유형
▶ 저자 및 집필동기
다니엘 : ‘하느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BC 175-164년)의 고통스러운 박해 중에서도 예언자들을 통해 하신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하느님께 충실한 자는 구원되리라는 확고한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참고 견디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주님이야말로 진정한 하늘과 땅의 주인이요 참 하느님이시며(2,47; 3,90; 4,34; 5,23; 11,36 참조), 인류의 역사는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 역사적 배경
2세기 말엽 유다는 시리아를 다스리던 안티오쿠스 3세(BC 223-187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안티오쿠스 3세는 유다인들의 고유문화와 야훼신앙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억압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아들 안티오쿠스 4세(BC 175-164년)는 유다인들에게 그리스 문화를 보급하기 위하여 종교탄압을 하였다. 그는 할례 등 유다의 모든 종교적 관습을 금지하고 성전 보화를 약탈하였으며 이에 저항하는 유다인들을 가혹하게 처형하였다. 유다인 중 일부 상류층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였으나 많은 유다인들은 순교를 감수(2마카 6-7장)하거나 사막으로 피신하였다.(1마카 4,36-61; 2마카10,1-8).
박해 시절에 유다인들은 두 가지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였다. 첫째, 극심한 박해가 일어나기 전에 그들을 지배하는 이교도 통치자들, 군인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들어와 사는 이교도 주민들의 종교적 관습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 둘째, 일단 박해가 일어난 다음에는 살아남으면서도 어떻게 자신들의 신앙과 유다교 전통을 지킬 수 있을까? 다니엘서는 박해에도 굽히지 않고 유다교와 그 전통에 충실한 유다인들을 격려하며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안티오쿠스의 박해를 직접 다룬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다니엘서는 이야기의 상황을 400년 전 바빌론 유배 시대로 끌어올렸다.
▶ 문학유형
당시 유다문학에서 성행하던 교훈문학과 묵시문학 유형이 사용되고 있다.
교훈문학은 주로 이야기 부분에 나타나는데 가혹한 종교박해 속에서도 유다의 고유신앙과 종교 및 율법을 지킬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묵시문학은 대부분 환시부분(7-12장)에 나타나는데 다양한 환시를 통해 이방 잡신을 거부하고 인간의 능력을 불신하며 오직 하느님만이 참 지혜와 구원능력을 지니신 분임을 강조한다.
▶ 구성
1,1-2,4 서론 (히브리어)
2,5-6장 이방 나라들 (아람어) – 이야기 부분
아자르야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찬미가(3장)
7-12장 (아람어 + 히브리어 ) – 환시부분 (다니엘이 보는 환시들)
13장 수산나의 이야기
14장 벨 신상과 큰 뱀의 일화
▶ 다니엘서의 개요
내용의 구분에 따라서 역사적 부분(1-6장)과 예언적 부분(7-12장)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1-6장)은 “역사적”인 내용으로서, 바빌론 임금을 훨씬 초월하는 주님의 권능을 보여 주고 있는 다니엘 생애의 다섯 가지 일화를 전해 준다. 둘째 부분(7-12장)은 “예언적”인 내용으로서 세상의 제국에 대한 하느님의 우월성을 밝혀 주는 네 가지 환시를 담고 있다. 그리고 두 가지 이야기, 즉 수산나의 이야기(13,1-64)와 벨과 뱀의 이야기(14,1-42)가 덧붙여져 있는데, 이는 각기 2장과 6장 다음에 삽입되어야 할 내용들이다.
다니엘서는 선택받은 백성과 예루살렘 그리고 성전의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교 민족들의 운명에 관한 예언이다. 다니엘은 메시아 왕국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돌”(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그리스도)이 날아들어 임금의 허상을 쳐부수고, 그 돌이 “산같이 큰 바위가 되어 온 세상을 채운다.”(보편 교회가 된다.)는 꿈의 뜻을 밝혀 준다(2장). 이와 비슷한 생각은 “사람의 아들”의 내림으로 그 절정에 이르는 네 제국에 대한 환시(7장)에서도 드러난다. 사람의 아들은 제국들처럼 바다에서 올라오지 않고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7,13). 조금 더 나아가면, 이 “사람의 아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과 동일시되고 있다(7,18.27). 이것은 머리와 몸이 한 사람을 이루듯이 구세주와 그 백성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방인들의 예언자”라는 다니엘의 성격이 초대 교회의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지하 묘지의 벽화는 다니엘의 그림으로 차 있다. 그 그림에는 두 마리의 늑대 사이에 서 있는 수산나도 묘사된다. 불가마에 던져진 세 젊은이의 이야기(3,1-24)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위로를 찾았다. 다니엘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구원을 받은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이다. 하바쿡은 임종하는 사람들에게 노자 성체를 모셔 가는 사람으로 묘사된다(14,33-39). 다니엘은 유배 생활에서 자라난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고 있다.
전반부는 주로 과거의 사건들로서 다니엘이 임금궁에서 일하게 된 경위(1장), 네부카드네자르의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몽(2장),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는 풀무가운데 던져졌으나 하느님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 나온 세 청년(3장), 네부카드네자르의 두 번째 꿈(4장), 벨사차르의 오만한 태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5장), 사자굴에 들어갔다가 무사하게 나온 다니엘(6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느님은 능력으로 그 종들을 보호하시고 다스리시며, 이 세상의 권력자도 모두 하느님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후반부는 특별히 앞으로 일어날 내용들에 대해서 다루었다. 예언서의 성격에 따라 예언은 역사적으로 가깝게 일어날 일들과 멀리 미래에 있을 일들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포로들이 귀환한 후에 유대민족들이 정착하고, 주변 여러 나라들이 흥하고 망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어떤 취급을 받게 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정한 때에 메시아가 올 것이고, 메시아가 온 후에 흩어졌던 하느님의 백성들이 다시 모이게 되고, 모인 후 이들은 일정기간동안 대환란을 통과할 것이다. 그 후에 예언서의 여러 곳에 약속된 대로 주님께서 재림할 것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예언하신 내용들과 요한묵시록을 통해서 좀더 구체화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 신학적 주제
⑴ 역사의 주관자 하느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이방국가, 더 나아가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통치하심을 볼 수 있다.
특히 1-6장에서 하느님께서 그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가운데 베푸신 기적들을 볼 수 있다.
⑵ 기도의 능력
생사를 판가름하는 순간에 기도를 통해서 생명을 보존하는 기도의 능력이 잘 나타나있다.
⑶ 하느님의 장기적인 구속 계획
가깝게는 유다 백성들이 포로 상태에서 돌아온 후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있어야 할 일들과, 멀게는 이 세상종말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내용들이 나타나 있다.
⑷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 백성들을 향해서 베푸시는 은혜가 전반에 깔려있다. 하느님께서 그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확증들을 전달하고 있다
◆ 내용 자세히 보기
▶ 다니 1,1-21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이 왕궁에 들어가다
다니엘은 온갖 세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충성스럽게 하느님을 섬기는 신앙인의 모델로 소개하고 있다. 다니엘은 왕족이나 귀족 자손으로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였다(1,1-2). 다니엘에게 주어진 임무는 임금을 모시기 위하여 삼년 동안 준비 과정에 있었다(1,3-7).
다니엘은 유다교 신앙을 지키기가 가장 어려운 상황, 곧 이방인 궁정 안에서도 어떻게 유다교 신자로서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방인 임금의 궁정에서 시종으로 지내기 위해서는 이방식 이름을 갖게 마련이다. 히브리말로 다니엘(‘하느님은 나의 판관이시다.’)은 벨트사차르, 아자리야(‘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이’)는 아벳–느고라 불렸는데, 벨과 느고는 바빌론 신들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이 이름을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다교의 음식 규정을 따르는 문제는 달랐다. 다니엘은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내시장에게 채소와 물만 먹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1,8).
마지막으로 유다 종교 자체에 반대되는 명령 앞에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유다교의 일상 기도(다니 6장)와 정해진 규정대로의 예배를 막는다면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이교도 통치자들이 유다인들에게 우상을, 특히 신격화된 임금을 섬기라고 강요하면 온 힘을 다해 저항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불가마 속에서도 함께 계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도움이 없으면 ? 주님의 도움이 없더라도 우상을 섬기지는 않겠다(다니 3,18). 기적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하느님의 구원이 있든 없든 율법의 처음 두 계명을 결코 어길 수 없다.
1장에서 가장 부각되고 있는 주제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다니엘의 성공을 통해 저자는, 헬레니즘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당시의 독자들에게, 유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곧 사는 길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다니 2,1-35 네부카드네자르가 꿈을 꾸다
네부카드네자르가 매우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그 꿈과 뜻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꿈은 거대하고 더없이 번쩍이는 무시무시한 큰 신상을 보았는데,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청동이며, 아랫다리는 쇠이고, 발은 일부는 쇠로, 일부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떨어져 나와, 그 상의 발을 쳐서 부수어 버렸다. 쇠, 진흙, 청동, 은, 금이 다 부서져서,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 상을 친 돌은 거대한 산이 되어 온 세상을 채웠다(2,31-35).
▶ 다니 2,36-45 다니엘의 꿈 해석
4가지 금속들은 앞으로 연속적으로 일어날 강력한 4왕국을 가리키며, 이 나라들은 결국 돌멩이로 은유된 나라에 의하여 분쇄될 것이라는 해석이었다(2,36-45).
▶ 다니 2,46-49 임금이 다니엘을 중용
네부카드네자르는 자신의 꿈을 알아맞히고, 이를 명쾌히 해석한 다니엘에게 바빌론 모든 현자들을 거느리는 총 감독관의 지위를 내리고, 아울러 그에게 지혜를 허락하신 유다인들의 하느님을 모든 신들 중의 참 하느님으로 고백한다(2,46-49).
네부카드네자르의 이러한 고백은 한 때 예루살렘을 침입하여 성전을 모독한 인물이었던 그의 결정적인 회심과 굴복을 암묵적으로 표현한 신학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다니 3장 불 속에 들어갔던 세 청년의 이야기
네부카드네자르가 만든 신상에 절하지 않는 자는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질 것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다니엘의 친구들(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들은 이를 거절하면서 하느님께서 타오르는 불가마와 임금님의 손에서 저희를 구해 내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임금님의 신들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하였다(3,13-18). 네부카드네자르는 이들을 일곱 배나 더 달구어진 가마에 던졌다. 불이 너무 뜨거워 그들을 들어 올렸던 사람들도 타 죽었다(3,19-23).
온 세계가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지배를 받아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유익하거나 기분에 맞으면 괜찮다는 때에 우리에게 불변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다.
▷ 다니 3,24-90 아자르야의 노래와 세 젊은이의 노래
이 부분은 그리이스 원본에서 번역되어 다니엘서 아람어 원본에 추가된 것이다. 이 부분은 현재 보존되어 있지 않지만, 원래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집필되어 있었던 것으로, 공동번역성서에서는 이 부분을 제2경전으로 분리해 놓았다. 그 노래의 내용들은 모든 우주 만물을 예로 들어 하느님을 찬미한 내용들이다.
아자르야의 노래는 불길 속에서 부른 기도(3,29-45).
세 젊은이의 노래(3,51-90)
▷ 다니 3,91-97 네부카드네자르가 기적을 보고 하느님을 찬미하다
불 가운데 던진 사람이 셋인데 불 속에는 네 사람이 다니는데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네 번째 사람은 신의 아들 같아 보였다. 네부카드네자르가 이들을 부르자 이들이 불에서 나왔다. 네부카드네자르는 그들을 불 가운데서 구원한 하느님을 찬송하고 그들의 지위를 높였다(3,91-97).
신앙을 지킨 세 사람에게 구원의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은혜의 기회가 되었고 바빌론에게도 이스라엘의 하느님만이 만유의 주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은혜의 기회가 되었다. 이처럼 믿는 사람들이 행하는 믿음의 행위는 자신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유익을 가져다준다.
▶ 다니 3, 98-4,34 네부카드네자르의 두 번째 꿈
네부카드네자르의 두 번째 꿈은 매우 비극적이며 두려운 내용이었다. 세상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큰 나무가 등장한다. 그 나무는 땅의 중심에 서 있는 것으로서 그 끝이 하늘까지 닿아 있었는데 짐승들과 새들이 가득 모여와 둥지를 틀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4,7). 그의 꿈은 거룩한 감시자(4,11)에 의해 나무가 잘려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나무는 뿌리등걸만 남겨진 채 잘려지고 깃들였던 동물들도 모두 사라지게 되며, 그는 이후 짐승처럼 7년을 살게 된다.
▷ 다니엘의 해몽(4,19-27) : 자신을 너무 높게만 간주해오던 네부카드네자르에게 가장 비참한 위치로의 추락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다니엘은 정의와 자비를 베풂으로써 이 죄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한다(4,24). 1년 뒤, 임금은 바빌론에 있는 임금궁 옥상을 거닐면서 혼자 말하였다. “이것이 대바빌론이 아니냐? 내가 영광과 영화를 떨치려고 나의 강력한 권세를 행사하여 임금도로 세운 것이다.”(4,26-27)
▷ 꿈이 실현(4,28-37) : 네부카드네자르는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고 교만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이상한 병에 걸려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 1년이 지나서 꿈은 그대로 현실로 돌아왔다(4, 25-26). 임금은 정계에서 밀려나 짐승들이 사는 곳에 피신하며 오랜 시절을 보내야 했고(4,30), 기한이 찼을 때에 네부카드네자르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에 네부카드네자르는 정신을 되찾아, 가장 높으신 분께 영광을 드리고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을 찬양하고 찬송하였다. 그분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이고 그분의 나라는 대대로 이어지리라.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은 다시 영광과 영예를 회복하여 주시는데, 이러한 은혜에 보답하여 드리는 네부카드네자르의 찬양으로 이야기는 끝맺어지게 된다(4,31-34).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는 바로 네부카드네자르에 대한 스토리이다. 네부카드네자르가 우상을 섬기다가 노예 출신의 아비가일에게 폐위되어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하느님을 알게 되어 다시 임금에 오른다는 스토리이다.
▶ 다니 5장 벨사차르 임금
벨사차르 임금은 자기 아버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금은 기물들을 가져다, 임금은 대신들과 임금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금과 은,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을 찬양하였다.(5,1-4)
벨사차르 임금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5,5-30) : 임금궁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을 썼다. ‘므네 므네 트켈, 파르신’ 글의 내용은, 벨사차르의 날수를 계산하여 보니 날수가 다 되었고, 그의 무게를 달아보니 모자랐으며, 결국 나라가 둘로 갈라져 메대와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진다는 해석을 다니엘이 제시한다(5,26-28) 바로 그날 밤에 벨사차르가 살해되었다.
▶ 다니 6장 다니엘의 재등용과 사자굴의 시련
다리우스는 나라에 총독 백스무 명을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그들 위로 다시 재상 세 사람을 임명하였다. 다니엘도 그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다른 재상들이 다니엘을 모함하기 위해서, 다리우스 임금에게 삼십일 동안 임금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넣는 법을 만들게 하였다. “다니엘은 임금이 그 문서에 서명하였다는 것을 알고 자기 집으로 갔다. … 그는 이전에도 늘 그러하였듯이,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고 자기의 하느님께 기도하고 감사를 드렸다(6,11).”
다니엘은 금령의 내용과 자신이 모함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예루살렘을 향해 창이 나있는 다락방에서 하루 세 번 기도를 바친다. 이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원칙에 철저하고 이 확신으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단호함이 바로 구원의 힘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니엘이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고, 재상들이 다리우스에게 고소하여 사자굴에 넣기를 청했다.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사자의 입을 봉함으로 다니엘을 보호하셨다(6,16-23).
이러한 기적을 보고 임금은 다니엘의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6장의 마지막(6,29)은 다니엘이 키루스 통치까지 살았음을 보도하는데, 이는 다니엘이 키루스 제일년까지 임금궁에서 살았다(1,21)는 내용과 맞물려 있고, 이렇게 6장이 1장과 편집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다니엘서 전반부(1-6장)의 기나긴 여정이 끝남을 암시하고 있다.
◇ 다니 7-12장
예언은 역사적으로 가깝게 일어날 일들과 멀리 미래에 있을 일들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일례로서 예언자는 B.C. 175-164년 안티오크스 에피파네스 4세가 유대민족을 핍박하는 무참한 광경을 보았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후에 재림이 임박했을 때 오는 대환란 사건으로까지 확대되어 보였다. 이럴 때 우리가 조심해야할 것은 어떤 한 사건에 고정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한 사람, 혹은 어떤 정확한 때를 지목해서 말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 부분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해석상 정확한 연대가 나오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메시지의 중요한 관점이 우리에게 정확한 연대보다는 큰 그림을 보여주는데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다니 7장 다니엘의 환시
성서 묵시문학의 대표적 본문중의 하나인 다니 7장은 묵시문학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 틀을 드러내준다. ① 소재들의 상징성(바다에서 떠 오른 네 가지 짐승, 뿔, 기이한 자연 현상등), ② 천상집회 장면, ③ 환시에 뒤따르는 해석, ④ 해석자의 등장(주로 ‘천사’나 ‘천상적 존재’가 해석)이 그것이다.
다니엘서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다니 7장에 등장하는 ‘사람의 아들’ 주제는 그리스도교는 전통적으로 ‘사람의 아들 같은 이’(다니 7,13)를 나자렛 예수님을 지칭한 그리스도론적 표현이라고 주장해왔고, 이 ‘사람의 아들 같은 이’의 오심을 ‘재림’과 연결시켜 해석해왔다.
다니엘의 환시는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다. 그 네 짐승은 독수리 날개를 가진 사자(7,4), 입에 갈비뼈 세 개를 물고 있는 곰(7,5), 날개와 머리가 각각 네 개씩이나 달려있고, 몸은 표범인 짐승이었다(7,6절). 마지막 것은 가장 무서운 모양을 한 것이었는데 커다란 쇠이빨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든 으스러뜨리고 짓밟아 버리는 괴물이었다(7,7). 마지막 짐승은 뿔을 열개 가지고 있었고, 그 사이로 갑자기 작은 뿔이 생기더니 먼저 생긴 뿔 세 개를 뽑아버린다. 놀랍게도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것이 박혀져 있었고, 입이 있어서 말도 하고 있었다(7,8).
장면이 바뀌면서 다니엘은 천상옥좌와 거기 앉으신 ‘연로하신 분’(7,9)을 보게 된다.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져 나오는 옥좌에 앉으신 분 앞에서 천상법정이 개최되는데, 이 때 네 번째 짐승은 살해된다(7,11). 나머지 짐승들 역시 통치권을 빼앗긴 채 얼마간 연명하지만(7,12), 이후 ‘사람의 아들 같은 이’(7,13)가 구름과 함께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로 인도되고 그에게는 전적인 통치권과 영예가 주어지게 된다(7,14).
꿈이 끝나자 다니엘은 천상적 존재로부터 이 환시의 뜻을 설명 받는다(7,15-27).
거대한 네 마리 짐승은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임금이다. 넷째 짐승은 땅의 넷째 나라로 천하를 삼키며 부서뜨리며 하느님을 대적하고 하느님의 백성들을 핍박할 것이다.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어 그 권세를 잃어버리게 되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아 영원히 차지할 것이며, 모든 통치자가 그들을 섬기고 복종할 것이다.
많은 교부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 환시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역사 안에 오시는 시간도 가리켜 주는 것이다. 흔히 첫번째 제국은 아시리아–바빌로니아 제국으로 간주되는데, 이 나라는 메대–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키루스에게 정복당하였고, 페르시아는 알렉산더 대제의 그레코–마케도니아에 굴복하고 말았다. 알렉산더의 급사 이후 그 제국은 네 나라로 분열되었고, 마침내 로마 제국이 전 근동을 정복한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환시에 나오는 네번째 제국인 로마가 그리스도 왕국의 시작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 다니 8장 숫양과 숫염소에 대한 환시
다니엘은 환시를 통해 숫양과 숫염소를 보게 되는데 숫염소는 숫양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다. 그러는 사이 숫염소의 큰 뿔은 네 개의 뿔로 변하고, 네 개의 뿔은 다시 ‘작은 뿔’로 대체된다. 거룩한 자가 이천 삼백 주야가 지난 후에 성소가 복구될 것이라고 말했다(8,1-14).
가브리엘 천사가 환시를 설명(8,15-27) : 숫양은 메대와 페르시아의 임금들이고, 숫염소는 헬라임금으로 큰 뿔은 그 첫 임금이고 네 뿔은 그 나라 가운데 일어나는 네 나라이다. 네 나라의 마지막 때에 한 임금이 일어나는데 그는 비상한 파괴를 행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망케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부서질 것이다.
숫염소가 숫양을 무찌르는 장면은 알렉산더의 메대와 페르시아 정복을 의미하고 이 뿔이 부러지고 4개의 뿔이 새로 나는 모습은 그의 급작스런 전사와 제국의 4분할 통치를 의미한다. 특별히 숫염소의 작은 뿔은 안티오쿠스 4세를 상징하며, 그의 무서운 폭력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에 의해서만 평정될 것임이 제시된다. 그 어떤 힘에 의해서도 부서질 것 같지 않던 독재의 덫이 하느님에 의해 어떻게 산산이 부서지는 지를 설명해 준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부서질 것이다(8,25).”라고 함으로써 인간이 아무리 애써 보존하려고 해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신다면 단 하나도 유지할 수 없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묵시문학의 신학 중의 하나인 ‘비폭력성’에 대한 표현이다.
▶ 다니 9장
다니 9장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기간(70년)에 대하여 언급한 예레미야서(25,11-12; 29,10)를 해석하는 독특한 양식(미드라쉬)을 적용하고 있다.
어느 날 예레미야 예언서를 읽고 있던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다시 회복되기까지 7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알게 된다(9,23). 그러나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고심하고 하느님께 기도를 바친다. 이어 가브리엘이 등장하여 그 비밀을 풀어주는데, 이 부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일흔 주간’(9,24), ‘일곱 주간’, ‘예순두 주간’(9,25), ‘한 주간’(9,27), ‘반주간’(9,27)이라는 시간 개념들이다. 여기서 ‘주간’이라고 제시된 것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주간과는 다른 개념이다(민수 14,34 참조).
* 참고: 여기서 주간은 대개 7년으로 본다. 따라서 70주간은 7×70=490년을 의미한다. 그러나 알아야할 것은 이런 숫자들은 정확한 날짜를 알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분명한 것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예언대로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가 오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성이 다시 중건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 기름부음을 받은 분이 핍박을 당하고 돌아가실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게 될 것이다. 그 기간은 주간의 절반이라고 하였는데 결국 약 3년을 의미한다. 이 3년은 가깝게는 예루살렘성이 로마군에게 포위되어 고통받는 기간을 상징하기도 하고, 또 멀리는 7년 대환란 중 특별히 하느님의 백성이 깊은 고난을 받을 기간을 말하기도 한다.
▶ 다니 10-12장 다니엘이 티그리스 강 가에서 환시를 보다
다니 10-12장까지는 유대민족들의 개혁에 국한시켜서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환상과 예언들과 교훈들이 섞여있다.
다니엘은 티그리스 강가에서 세마포를 입고 우파즈 금 띠를 띠었고 몸은 녹주석 같고 얼굴은 번개의 모습 같았으며, 눈은 횃불 같고 팔과 다리는 광을 낸 청동 같았으며, 그가 말하는 소리는 군중의 아우성 같은 한 사람을 보았다. 그가 다니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뒷날에 당할 일을 깨닫게 하려고 왔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이제 페르시아군과 싸우려니와 자기가 간 후에는 그리스 제후의 천사가 올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 대적할 이는 미카엘뿐이라고 했다(10,1-21).
다니 11장은 페르시아의 마지막 임금으로부터 시작하여 시리아 셀류쿠스 임금조의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에 이르는 근동지역의 역사를 상징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는 일종의 ‘역사 보고서’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 이름들이 명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서술과 묘사를 통해 당시의 독자들은 쉽게 그 내용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바빌론 이후 메대 페르시아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시대에 이르기까지, 즉 메시아가 오시기까지의 세계의 열왕들의 파도를 예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 페르시아 시대(11,2b), 2) 알렉산더의 등장(11,3-4), 3) 프톨레미 임금조의 발전(11,5-6), 4) 이집트와 시리아의 전쟁(11,7-9), 5) 안티오쿠스 3세(11,10-19): 제1-2차 이집트 원정(11,10-15), 6) 셀류쿠스 4세의 짧은 통치(11,20), 7)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11,.21-45): 제1-2차 이집트 원정(11,25-28)과 유다인 박해(11,29-35).
박해에 대한 이스라엘 측의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영합’과 ‘투항’의 자세를 취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무력적 대응도 있었다(마카베오 항쟁의 경우). 그러나 다니 11장은 ‘마스킬림’이 보여주었던 비폭력적 대항을 가장 고무적인 자세로 제시하고 있다(11,32-34).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고통스러운 사건들은 하느님의 손에서 조정되는 사건들이고, 이미 그 결과는 하느님과 그분께 충실한(의인들) 이들의 승리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 함으로써, 지혜롭게 이 시련의 시간들을 ‘견디어내자’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손에 의해 이루어져 나가는 역사의 과정이므로, 인간 측의 무력저항이나 물리적 책략은 필요하지 않다. 오직 강한 신앙과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 고통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려는 자세만이 필요한 것이다(11,35). 이러한 입장은 ‘순교’에 대한 절대적 지지로 발전하고, 이에 대한 보상은 ‘부활’(12,2)이라는 주제로 제시된다.
다니엘은 유다 백성의 관점에서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예언한다(12장).
지연되는 종말에 대한 각기 다른 숫자들을 언급한다. 종말에 대한 정확한 숫자 제시가 아니라, 그 숫자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이미 다른 구원이 ‘시작’된 것이라는 역설이 삶의 희망이고 진리이듯, 종말론적 구원은 ‘늦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성서 묵시문학이 제시하고자 하는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 다니엘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의도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 후에 이 세상이 끝을 맺을 것이라는 점이다.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 앞에서 그래도 희망을 갖자는 무기력하고 고루한 호소보다 더 희망적일 수 있는 것은, 내가 변하자는 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변할 때 삶은 의외로 쉽게 찾아질 수 있다.
▶ 다니 13장 다니엘이 수산나를 구하다
구약성경 다니엘서가 전해주는 수산나 이야기(13장)는 바빌론 유배시절 있었던 일이다.
유다인들은 당시 바빌론에서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살았다. 그들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권을 자치적으로 행사하였고, 사법권도 독립적으로 행사하였다. 두 원로는 상당히 부패했었고, 따라서 음모를 꾸밀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유다인 백성 가운데서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아주 부유했던 요아킴은 그들에게 자기 집을 마음껏 사용하라고 내주었다. 수산나는 자주 남편의 정원에 들어가 거닐곤 하였는데, 이것을 본 두 원로는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고, 자신들의 뜻을 실현할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 무방비상태로 목욕을 하는 수산나에게 달려가 협박하였다. 곧 자신들의 뜻대로 잠자리를 함께 하든지 간음죄로 고발을 당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였다. “무죄한 이의 승리”인가? 혹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용기”인가?(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가 붙인 제목). 수산나는 주님의 계명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원로들의 강요를 받아들여 그들과 함께 잠자리를 할 경우 간음죄를 범하는 것이고, 이는 자기 자신을 비천하게 여기는 것, 곧 “자기 자신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르테 죌레)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니오’라고 말하는 거절과 저항의 용기는 자기 자신을 꼼짝 못할 곤경에 빠뜨리는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는 덕행이다. 현대인에게도 많은 이기심, 곧 욕망과 탐욕과 권력욕의 유혹 앞에서 이러한 용기의 덕행이 필요할 것이다.
수산나는 참된 재판관이신 하느님께 호소한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을 보내시어 정의를 바로 세우게 하신다. 다니엘은 신문 없이 이루어진 재판의 무효성을 주장하며, 법정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법정은 다시 열렸고, 다니엘은 그 두 원로를 따로 불러 신문하였다. 둘 중 한 원로에게 두 남녀가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느냐고 추궁하자 그는 “유향나무”(그리스어로 ‘스키논’)라고 대답하였다. 다니엘은 하느님께서 이 원로를 둘로 베어버릴 것(그리스어로 ‘스키조’)이라고 선언한다. 다니엘은 수산나의 일로 인하여 이 원로가 저지른 지난날의 죄가 드러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다른 원로를 불러 똑같이 추궁하자 그는 “떡갈나무”(그리스어로 ‘프리노스’)라고 대답하였고, 다니엘은 하느님께서 그를 잘라버리실 것(그리스어로 ‘프리오’)이라고 선언한다. 이 노인은 유다인이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의 딸들을 이런 식으로 능욕해왔던 터였습니다. 이들의 거짓 증언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온 회중은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며, 두 원로가 수산나에게 가하려던 형벌을 거짓 증언한 그들에게 되돌림으로써 그 둘은 사형에 처해졌다.
힘 있는 사람은 항상 원하는 것을 다 누리는가? 세상이 강자의 뜻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과 죄악은 하느님의 권능이 나타날 경우 그 한계에 부딪힌다. 하느님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보시고, 진리와 거짓을 분명하게 구별하신다. 그분은 정의로운 분이시고, 인간을 자비롭게 대하시는 분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신다”(루카 1,51-52).
▶ 다니 14장 다니엘과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 사이에 있었던 일.
▶ 다니 14,1-22 다니엘이 벨 신상을 부수다
임금이 다니엘에게 ‘너는 벨께서 살아 계신 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다니엘은 “그것은 속은 진흙이고 겉은 청동으로서 무엇을 먹거나 마신 적이 전혀 없습니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임금이 분노하여 벨신의 사제 70인에게 명하여 벨신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제물을 먹고 마신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명하였다. 임금은 사제들의 요청대로 제물을 마련해주고 신전의 문을 닫고 임금의 옥새로 봉인하였다. 다니엘은 신전에 은밀히 재를 뿌려 사람들이 드나들면 자국이 남도록 했다. 그날 밤에도 사제들은 늘 하던 대로 아내들과 자녀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벨신에게 바쳐진 제물들을 먹고 마셨다. 이튿날 아침, 다니엘은 임금에게 신전 주변과 신전 안의 마루에 발자국이 무수히 생긴 것을 보여주고 이는 신관들과 그 가족들의 소행인 것을 밝혔다. 이에 임금은 그들을 모두 사형하고 벨 신상을 파괴하였다.
▶ 다니 14,23-30 다니엘이 큰 뱀을 죽이다
바빌론에는 큰 뱀이 있었는데 모든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경배하였다. 다니엘은 역청과 굳기름과 머리털을 가져다가 한데 끓여 여러 덩어리로 만들어 먹도록 하였더니 뱀이 배가 터져 죽었다. 다니엘이 뱀을 처치하자 바빌론 백성들은 자기들이 신으로 경배하는 뱀을 처치하였으므로 매우 분개하였다. 그리고 “임금은 유다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벨을 부수고 뱀을 죽이고 사제들을 살해한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백성들은 다니엘을 자기들의 손에 넘겨 줄 것을 요구하였다.
▶ 다니 14,31-42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살아 나오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 일곱 사자와 함께 있었지만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임금이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이 죽은 줄 알고 슬퍼하여 굴속을 들여다보니 다니엘은 죽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임금은 큰 소리로 ‘주 다니엘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위대하십니다. 당신 말고 다른 분은 계시지 않습니다’고 외치고 다니엘을 꺼내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니엘을 참소한 무리들을 대신 사자굴에 던져 넣으니 사자들이 임금의 앞에서 바로 그들을 먹어치웠다. 키루스 임금은 히브리 포로들을 모두 석방하여 고국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토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