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까이 : ‘나의 축제’라는 뜻
▶ 시대 배경 :
BC 587년경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유다에 진격해 들어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바빌론 유배). 세월이 흘러 바빌론 제국은 임금위 계승 분쟁으로 허약해지고, 이것을 틈타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임금이 BC 539년 수도 바빌론을 점령하게 된다.
키루스 임금은 BC 538년 바빌론에서 유배살이 하던 모든 유다인에게 귀환 칙령을 반포한다(에즈 1,1-4). 유배에서 귀환한 유다인들은 성전 재건에 착수한다. 그러나 옛 북부 왕국의 사마리아인들과의 갈등과 방해로 성전 재건이 18년간 중단된다(에즈 4,1-5). 이러던 중 BC 522년 페르시아임금이 죽고 다리우스임금이 등극하자, 유다 공동체는 이 사실을 하느님의 개입 예고, 개입징표로 보았다(하까 2,21-22). 이러한 징표를 느끼던 유태인들 앞에 하까이와 즈카르야는 예언자로 등장하였다.
520년 하까이는 성전 설교로 시작하여(8월27일부터 12월말까지 약 4개월간) 예언자로 활동한다. 그의 설교는 백성들에 의해 수용되었고, 성전 재건축을 위한 예언 활동은 즈카르야에 의해 계승되었다(하까 1,3-15). 예언자는 예배와 성전에 큰 관심을 쏟고 성전 주변에서 생활했다. 결국 페르시아 임금 다리우스 1세의 허가로 성전 건축은 BC 515년경 완성되고 제2성전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에즈 5,1-2).
▶ 집필동기
생계를 유지하기에 급급하면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 안에서 축제를 지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전을 재건하기를 촉구하였다.
유배를 견딘 백성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와 희망에 들떴고 성전을 다시 지으려 하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귀환하여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백성은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주변 민족은 협조적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에는 흉작이 닥쳤다(하까 2,16-19). 하까이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전을 세울 때 그 옛날처럼 뭇 나라들이 조공을 가져다 바치는 다윗 시대의 영화를 다시 누리게 될 것임을 선포했다.
▶ 저자 :
하까이의 제자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 하까이의 제자는 역대기 편집자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즈카르야, 말라키와 함께 바빌론 유배 이후에 수집된 예언서 중의 첫번째 책
성전재건이 진행되면서 있었던 중요한 일들과 예언이 시간별로 정리되어 있다(1,14-2,1.10.20).
▶ 메시지 :
하까이의 활동기간은 아주 짧았지만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예배를 정화시키고 희망을 진작시켰다. 동시대인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해석해 주려고 한다. 빈곤과 흉작은 그들의 영성적 혼수상태에 대한 벌로서, 이제 신앙의 열성을 되찾고 주님께 합당한 집을 지어 드리는 작업을 재개하면, 많은 복을 받고 구원의 시기가 결정적으로 시작되리라는 것이다.
민족들의 동요는 이미 ‘주님의 날’을 가리키는 전조이다(2,21-22). 구원은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이전의 것보다 더 영화로운 성전, 그리고 임금으로 오시는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 이후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하느님의 백성을 힘차게 지탱해 준다.
영화로운 제2성전과 하느님의 통치를 이룩할 임금적인 메시아에 대한 그의 예언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를 마지막 성전이자 종말의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인도한다.
▶ 내용
5가지 신탁(神託)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에 각각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 예언이 진정 하느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
성전 재건의 목적은 기다림 속에 있는 메시아의 희망과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성전이란 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함께 현존하시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경신례를 통해 하느님과 당신 백성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전이 없다거나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의미는 결국 하느님의 부재(不在)로 이해된다.
1)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촉구(하까 1,1-11)
하까이 예언자는 먼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라고 촉구한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를 미루고 있는 귀환자들을 향해 하까이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신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아무리 애써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려고 한다 해도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질책하면서(1,5-6.10-11) 하느님의 영광이 머물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2) 성전 재건의 시작(하까 1,12-15a)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를 비롯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촉구하는 하까이 예언자의 말을 귀담아 듣고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6월 24일)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한다.
3) 새로운 성전의 영광(하까 1,15b-2,9)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위한 이스라엘 백성의 열정은 일깨워졌지만 재정적인 이유와 솔로몬 임금이 지은 옛 성전을 기억하는 이들이 자신들이 재건하기 시작한 성전이 너무나 초라하게 보여 용기를 잃고 만다. 하까이 예언자는 이들에게 새 성전이 솔로몬 임금이 건축한 성전에 비해 비록 영화롭지 않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영이 새 성전에 머물 것이며(2,5),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들의 보화가 성전에 쌓이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2,7), 새 성전의 영광이 옛 성전의 영광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말로 백성을 격려한다(2,9).
4) 제의적인 정결과 부정의 문제(하까 2,10-19)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재건축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백성 전체가 하느님 앞에서 부정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의 경제적인 삶이 어렵게 되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재건하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 앞에서 회개와 속죄의 행위를 실천하는 길이며, 그러한 백성들의 노력과 정성을 보신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가르침을 선포한다. 왜냐하면 성전을 재건하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건물 하나를 건축하는 공사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에게로 돌아섰다는 가시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5) 주님께서 즈루빠벨을 선택하시다(하까 2,20-23)
하까이 예언자는 다윗 왕조의 마지막 왕손인 즈루빠벨에게서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본다. 하느님께서 세상의 왕국들을 뒤엎고 그 왕좌의 권세를 꺾으실 때에 다윗 가문의 후손인 즈루빠벨을 당신의 ‘인장 반지’처럼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날에 스알티엘의 아들, 나의 종 즈루빠벨아 … 내가 너를 받아들여 너를 인장 반지처럼 만들리니 내가 너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하까 2,23).
▶ 하까이서의 중심 신학사상
1)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과 하느님의 현존
하까이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재건하는 것은 주 하느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을 가늠하는 척도이며, 하느님께서 성전과 그곳에서 거행되는 전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머물게 되면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느님의 현존이 머무시는 만남의 천막을 중심으로 살았던 것과 같은 현상이다
* 성전 재건의 의미
같은 시기의 예언자인 하까이와 즈카르야를 비교한다면, 두 예언자 모두 성전 재건과 메시아 희망을 포함한 (종말론적) 구원을 선포합니다. 이 두 가지가 귀향 후 예언자들의 중심 주제다. 그 두 가지 주제 가운데 하까이는 성전 재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것이 구원을 위한 조건이 된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는 것은(1,2) 하느님 아닌 다른 어떤 것을 하느님보다 앞세운다는 것, 경제적인 문제가 이스라엘에게 하느님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삶을 위하여 “필요한 한 가지”(루카 10,42)는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백성 가운데에 현존하시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그러한 사실을 잊고 다른 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성전 건물을 짓는 데에 착수하면 축복과 풍년이 따르며 모든 일이 잘되리라는 기복 신앙적인 태도가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먼저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주님께서 “쓰러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라고 하신 것이 흔들리는 교회를 바로 세우라는 뜻까지를 포함하고 있었듯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집을 지어라”(1,8)라는 말씀도 만사 제쳐놓고 성전 건물을 짓는 데에 매달리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프란치스코가 교회를 세운 것은 그의 가난을 통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