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문학 사상 가장 먼저 쓰여진 예언서 – 최초의 ‘작가 예언자’
간결하고 인상적인 언어
▶ 저자 : 아모스
아모스란 이름의 뜻 : ‘짐, 멍에’, ‘주님을 짊어진 사람’.
예루살렘에서 몇 마일 떨어진 트고아의 목자 출신(아모 1,1)
여로보암 2세(786-746)의 통치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북왕조에서 활약했다.
하느님의 현존과 정의를 크게 강조하였기에 ‘정의의 예언자’란 별명
▶ 시대적 배경 및 집필동기
여로보암 2세때에 시리아는 약화되어 있었고, 아시리아는 내정문제로 골몰하여 이스라엘은 국가적으로 부흥과 경제적 발전을 누리고 있었으나 사회에서는 사치 풍조가 만연하였고 부정과 불의가 난무하였다. 매음행위와 퇴폐풍조의 만연과 더불어 예배행위도 타락하였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돈벌이에 혈안되어 예배는 건성이었다(8,4-6).
그런데 아시리아에서 디글랏빌레셀 3세가 왕위를 찬탈하고, BC 805년 시리아를 공격한 후 세력을 확장시켜 팔레스티나를 정복하게 된다. 아모스 시대에는 아시리아의 위협이 아직 수평선에 떠오른 먹구름의 상태였으며 아모스는 그것을 폭풍의 징조로 보았다. 또한 그것을 단지 아시리아 제국주의적인 야망만이 아니라, 정치무대에서 활동하는 주님의 의도로 간파하였다.
그러나 사마리아와 유다는 여전히 자만에 빠져 있었고 이에 대해 아모스는 칼의 야만성, 포로, 황량한 도시, 정치적 파탄 등의 강력한 말을 퍼부음으로써, 지배계층의 부정과 불의, 부당한 억압과 수탈을 고발하며 타락한 예배행위와 성소들을 힐난하고 하느님의 윤리기준에 의거하며 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잘못을 질타하였다.
▶ 집필시기
여로보암 2세 때인 BC 750년경(7,10-17참조) 자신의 설교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므로 후대에 증거로 남기기 위해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여호 24,26-27 참조).
▶ 구조와 내용
가. 이방국가에 대한 심판 신탁 (1,1 – 2,16)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에 대한 압제와 불의를 규탄. <예언서 특징>
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신탁 (3,1-6; 14; 8,4-14; 9,7-10)
주님의 날 (8,9-13)
다. 다섯개의 환시(7,1-9,10)
① 7,1-3 : 첫째 환시–메뚜기 떼
② 7,4-6 : 둘째 환시– 삼키는 불
③ 7,7-9 : 셋째 환시–다림줄
④ 8,1-3 : 넷째 환시–여름철 과일 바구니 – 종말이 다가왔음을 의미
⑤ 9,1-4 : 다섯째 환시 : 제단에 계신 하느님의 모습–심판의 불가피성
라. 구원에 관한 약속(9,11 – 15) – 이스라엘의 회복
주님의 마지막 말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임을 암시.
▶ 내용
1) 하느님은 지역신, 민족신, 이스라엘만의 신이 아니라 그 주변국가에도 관심을 가지고 모든 국가에서도 지배권을 지니신 분이다.
2) 모든 국가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정도에 따라, 자신의 행위에 따른 심판을 받는다. 계시내용에 의해서도 심판받는다(1.3-2.3). 이교국가들의 죄악을 열거하고, 도덕적 한계를 넘어서 고발한다.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도 똑같은 원칙에 따라, 원칙을 어기면 심판하신다. 계시가 많을수록 하느님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고 아모스는 말한다. 계시를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른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더 큰 책임이 있다. 특권은 책임을 갖는다.
3)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날” 사상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그날이 오면 주님은 주변국가를 심판하시고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주님의 날이 오면 – 이스라엘도 심판을 받는다고 말한다(15.18-20참조). 따라서 주님의 날이 희망의 날이기보다는 저주의 날이 될 것이다.
4) 아모스서는 주님께서는 정의로우신 분이라고 한다. 정의의 실천여부로 하느님 백성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옳고 그름, 선악의 기준이 있다. 주님께서는 여기에 근거해 바르게 행하신다. 하느님이 의로우니 그 백성도 의로워야 한다(에제키엘, 레위기의 정신). 아모스는 법정에서의 불의, 도덕에 대한 무관심을 보고 개탄한다. 하느님은 이러한 것에 대해 참을 수 없고 참지 않으실 것이다. 사제와 경신례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정의를 뒤로하고 이루어지는 것을 반대한다(5.21-27).
5) 작은 희망이 나타나 있다. 한 나라가 타락했다면 분명히 심판이 찾아온다(7.7-9).
▶ 여러 가지 교훈들!
가. 이스라엘은 듣고 회개하라!
* 사회 정의를 무시하는 권력층, 이에 침묵, 동조하는 종교 지도자들
인간 실존의 단면을 고발
‘언제면 초하룻날이 지나서 곡식을 내다 팔지? 언제면 안식일이 지나서 밀을 내놓지? 에파는 작게, 세켈은 크게 하고 가짜 저울로 속이자.’”(8,5)
* 형식적인 예배나 예물보다 참 경건을 회복해야 한다. 예배보다 삶 속에서 공의와 정의를 회복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올바른 회개란 성소를 찾아 겉치레뿐인 예물을 바치는 데 있지 않고 정의를 실천하는 데 있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친다 하여도 받지 않고 살진 짐승들을 바치는 너희의 그 친교 제물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 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희의 수금 소리도 나는 듣지 못하겠다.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2-24).
* 압제받는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
나. 하느님의 예언자처럼 말하라!
우리 가운데 약한 자, 훈련 받지 못한 자들도 하느님께서 쓰시면 얼마든지 능력 있게 하느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
다. 심판의 때가 이르기 전에 주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스라엘이 불의와 부패로 이미 중병에 걸렸다고 진단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2,6ㄱㄴ)
네 가지 죄
① 채무자 인신매매: “그들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다.”(2,6ㄷㄹ)
② 약자의 권리를 짓밟는 것: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는다.”(2,7ㄱㄴ)
③ 인륜을 거스르는 패륜: “아들과 아비가 같은 처녀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다.”(2,7ㄷㄹ)
④ 채무자 강탈: “제단마다 그 옆에 저당 잡은 옷들을 펴서 드러눕고 벌금으로 사들인 포도주를 저희 하느님의 집에서 마셔댄다.”(2,8)
‘이스라엘의 죄’라고 일컬으며 사회 전반에 걸친 죄악을 고발(2,6)
지금 가난한 이들도 훗날 부유하게 되면 같은 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예견
아모스서에서는 시나이 계약이 한 번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예언자는 북부 이스라엘인들도 남부 유다인들처럼 선택된 민족으로서 계약의 백성임을 전제합니다(3,1-2).
“너희는 나를 찾아라. 그러면 살리라. 너희는 베텔을 찾지 말고 길갈로 가지 마라…….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 그러면 살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불처럼 들이쳐 요셉 집안을 삼켜버리리니 베텔에는 그 불을 끌 자 없으리라.”(5,4-6)
이스라엘의 전통 성소였던 베텔과 길갈은?
그저 풍성하게 바치는 외적인 희생제물 봉헌에 치중하며 보이는 것에 큰 가치를 두게 되어 사실상 하느님을 뵙고 경배 드리는 인격적 영적 만남의 성소 기능이 사라지게 됩니다.
아모스 예언자가 북이스라엘에서 얼마간 예언 활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모스 예언서에 따르면 그는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에 의해 쫓겨납니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7,12-13).
예언자가 거듭된 박해와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힘은 자신이 들은 소리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확신이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7,14-15). 그는 자신의 내면을 강하게 울리는 하느님의 소리를 거역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으랴?”(3,8) 하고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