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재앙이라는 훨씬 큰 스케일을 다루며, ‘주님의 날’을 보여주는 중요한 책
▶ 저자
요엘이란 이름의 뜻 :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또는 ‘주님은 나의 하느님’입니다.
경신례에도 밝았던 예언자이며, 뛰어난 시인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한 예언자.
특히 여러 옛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도 나름대로 주님의 날에 이루어질 심판과 구원을 힘있게 선포했다.
‘하느님 영의 강림’을 밝힌 내용은 신약성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사도 2,17-24). 그래서 요엘은 ‘영의 예언자’ 혹은 ‘성령강림의 예언자’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 집필시기 : 유배 이후인 대략 BC 400년경을 요엘서의 작성시기로 본다.
(경신례를 많이 강조, 반면에 임금이나 북 이스라엘 왕국 및 사마리아인에 대한 언급이 없다.)
▶ 집필동기
페르시야 시대 말기인 BC 5세기경, 유다는 예루살렘 성전도 재건하고 성벽도 쌓고 유다교도 형성하여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체제에 안주하려는 경향도 거세졌다.
메뚜기 떼나 가뭄 같은 재앙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의 표징이다. 요엘은 이것을 보고 정신 차려 다시금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도록 촉구하는 것이다(요엘 2,27; 4,17). 그는 하느님께서 뭇 민족을 심판하시지만, 만민에게 영을 불어넣으시고 그 심판의 날을 ‘구원의 날’로 바꿔주신다는 그분의 약속을 전하며 희망을 전해준다.
결국 공동체가 지금 온 마음으로 하느님께 돌아가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 안에 머물 때,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 구조와 내용
가. 메뚜기떼의 침입 (1-2장)
나. 주님의 날에 대한 묘사 (3-4장)
▶ 요엘서의 내용
먼저 무서운 메뚜기 재앙을 상상하게 만든 다음, 메뚜기 떼의 공격을 주님이 유다를 공격하기 위해 보내신 군대의 공격으로 바꾼다. 이런 문학기법을 통해 요엘은 궁극적인 구원이 실현되는 ‘주님의 날’이 임박했으니 하느님 백성은 하루 빨리 회개해 하느님께 되돌아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요엘 시대에 일어난 메뚜기 재앙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재난이었다: 풀무치, 메뚜기, 누리 황충 등이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요엘 1,4), 큰 가뭄까지 닥쳤다.(요엘 1,10) 이런 거듭된 자연 재앙의 결과로 ‘정녕 사람들에게서 기쁨이 말라 버렸’(요엘 1,12)고 짐승들도 신음한다(요엘 1,18).
이 때 요엘 예언자가 금식과 참회를 외치며 등장한다.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신의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후회하여 뒤로 복을 남겨 줄지 주 너희 하느님에게 바칠 곡식제물과 제주를 남겨 줄지 누가 아느냐?”(2,13-14)
옛날 이스라엘인들은 슬픔이나 재난을 당하였을 때,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뿌리고 금식하였다. 그런데 이 의식은 자칫 외형적인 것으로 흐를 수 있다. 예언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백성이 하나가 되어(2,16), ‘진심으로 뉘우쳐 금식하며 가슴을 치고 우는’ 참회(2,12), 금식과 참회가 하나인 탄원의 기도를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바치라고 촉구한다. 그러한 속마음을 보시고 하느님도 ‘마음’을 움직이시어, 이 재난을 멈추게 하시리라는 것이다.
절망과 비탄 속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가 되어(요엘 2,16) 깊이 참회한다. 그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어(요엘 2,18) 결국 재난을 멈추신다. 이제 땅과 사람과 짐승은 새 기쁨을 노래한다(요엘 2,21-24).
특히 3장에서 예언자는 당신의 영을 내려주신다는 하느님 약속을 전해주고 있는데,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러한 약속이 오순절의 성령강림을 통해 실현됐다고 선포했다(사도 2장). 따라서 주님의 영인 성령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때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요엘 3,5)는 요엘 예언자의 말씀을 일상의 생활 안에서 실현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 메시지
요엘서는 ‘주님의 날’을 소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주님의 날은 종말의 날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죄에 대해서 심판을 받는 날, 또는 하느님의 백성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는 날이다. 그래서 단순한 끝 날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주님의 날에 새 생명과 새 얼을 부어주신다고 한다. 하느님의 그 같은 은혜는 그 자체로 목적을 띤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것은 백성이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복속되어 있고 하느님을 알게 된다는(2,27, 4,17) 확신에 있다. 사도 베드로와 복음사가 루카는 성령강림의 사건을 요엘서에 따라 묘사하고 있다(사도 2,17-24, 요엘 3,1-5 참조).
메뚜기 재앙과 “주님의 날”과 관련해서 계속 둘씩 대칭을 이루면서 배열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과 관련된 말들도 비슷하게 표현된다.
요엘이 선포하는 “주님의 날”이 단순히 미래의 어느 날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이 종말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멸망과 함께(특히 2,3.11) 궁극적인 구원을 가져온다는 것이다(3-4장).
“주님의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하느님의 백성에 소속되거나, 율법이나 경신례에 충실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보장받지 못한다(2,12-17). 예언자들의 말씀에 따라 ‘마음을 찢는 참회’를 해야, 심판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모든 사람”에게, 곧 아들과 딸, 늙은이와 젊은이, 자유인과 노예의 구분 없이, 모든 이에게 당신의 영을 풍성히 내려 주신다. 그리하여 모든 이가 예언자가 된다. 저마다 예언자처럼 하느님과 가까워지고, 그분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이다(3,1-2).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이제 주님의 이름을 참된 마음으로 부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신다(3,5).
요엘이 선포한 “주님의 날”은 아직도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강조한 참회, 그리고 이 날이 지닌 현재성은 지금도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