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예언서 – 대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와 함께 분량이 많아)
▶ 저자
에제키엘 : 차독 계열의 사제인 부지의 아들로 태어난(-622년경) 예루살렘의 사제였다.
이름의 뜻 : ‘하느님은 강하시다’ 또는 ‘하느님께서 강하게 하신다’.
바빌로니아가 여호야긴 임금을 잡아간 일차 유배 때(BC 598년)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가, 오년 후인 BC 593년경 바빌로니아의 크바르 강가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 당시 치드키야가 다스리던 유다는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며 이집트에 의존하며 안일하게 살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예레미야의 활동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에제키엘은 예언자로서 주로 환시와 상징적 행위들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그의 선포내용은 예루살렘의 멸망(-587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왕조말엽에는 예루살렘의 죄에 대한 심판 경고가 주류를 이루다가, 왕조 멸망 후에는 유배의 시련을 겪게 된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새로운 구원의 약속을 선포가 강조된다. BC 571년까지 22년 동안 예언자로 활동하였다(BC 593-571년). 행복과 불행,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전한 예언자
▶ 내용
예언서의 골격은 에제키엘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 에제키엘이 활동하던 시기(BC 593-571년)에 대부분의 내용을 산문체로 기록.
▶ 집필동기
에제키엘은 바빌론 유배시기를 전후하여 그 전에 활약했던 이사야와 예레미야(예루살렘에서 활동)의 맥을 잇고 유배기 후반부에 활동했던 제2이사야보다는 앞서는 예언자다. 다른 동포들보다 먼저 바빌론 땅에 끌려왔던 에제키엘은 남아 있는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는 동시에 끌려온 동포들에게 하느님 신앙과 희망을 안겨주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었다. 그는 먼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이는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계명을 충실히 지키지 않는 죄 때문에 받는 하느님의 심판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러나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이므로 의롭게 생활하면 살 길을 열어주신다고 알려준다. 사제이자 예언자인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을 특별히 강조한다. 하느님은 새 마음을 지닌 새 백성들이 당신을 섬기는 새로운 성전, 새 세계를 이루시려는 구원의지를 강하게 지니셨다.
▶ 구조 – ‘주님의 영광’에 대한 환시가 중심
A. 예언자의 소명(1-3장)
B.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심판 예고 (4-24장)
C. 이웃나라에 대한 심판예고 (25-32장)
D. 하느님의 구원선포(33-39장)
파수꾼에 대한 예언 (33장), 구원에 대한 약속 (34-39장)
E. 새로운 예루살렘 (40-48장)
▶ 주요사상
A. 신관 : 하느님은 민족과 국토의 영역을 넘어서 다른 민족과 국토에도 그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느님이시다.
B. 주체적 신앙 강조: 에제키엘은 개인의 중요성과 책임을 강조(에제18,20).
C. 새로운 삶의 사상: 해골의 골짜기의 기사(에제 37장)
축복은 진정한 회개가 있은 후에야 이루어진다(에제 36,25참조).
◆ 내용 자세히보기
◈ 에제 1,1-3,21 에제키엘의 소명 – 예언자로 불림받은 에제키엘
▶ 에제 1,1-3 소명의 시기와 장소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593년), 에제키엘의 나이는 30세로 추정된다. 장소는 유배지 바빌로니아의 크바르 강가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에제 1,4-28 주님의 발현
환시 가운데 하느님을 체험하게 된다. 환시는 하느님 현현의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사람과 사자 등 네 가지 형상을 한 신비로운 존재들과, 그들 머리 위 궁창 위에 있는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의 영광”의 형상을 보게 된다(1.4-28). 종교적으로 부정한 땅인 유배지 바빌론에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 때까지 유다인들은 하느님이 예루살렘의 성전에만 현존하시는 것으로 믿어 왔으나(1열왕 8,11), 이 사건을 통해 하느님은 장소적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 초월적인 분, 땅의 지배자이심이 계시된 것이다.
▶ 에제 2,1-3,15 에제키엘이 부르심을 받다
에제키엘을 가리키는 “사람의 아들”란 말은, 인간의 한계, 부족함을 함축하고 있는 개념으로 “하느님의 영광”과 대조를 이룬다. 즉 에제키엘은 인간의 실존적 제한성을 지닌 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결정을 나타내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있는 두루마리를 받아먹고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라고 이르신다(2.1-3.3). 그 두루마리를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3,3)는 표현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모신 예언자가 체험한 내적인 충만함을 의미한다. ‘이마가 단단하고 마음이 굳은자들’은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반항의 집안, 곧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말씀을 전하는 소명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거부 때문에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소명은 말씀을 전하는 이의 거부로도 무효화하지 않는다.
▶ 에제 3,16-21 예언자 : 파수꾼
에제키엘을 이스라엘 민족의 파수꾼으로 그를 세운다고 밝힌다. 파수꾼이란 성의 망루에 서서 외적의 침입을 발견하고, 성 안의 백성들이 미리 대처할 수 있도록 알려 주는 사람이다.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심판을 미리 경고함으로써, 이스라엘로 하여금 악한 길을 버리고 참다운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 에제 3,22-27 에제키엘이 벙어리가 되다
그는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자마자 실어증에 걸려 두문불출하게 됩니다(3,25-27 참조). 오직 하느님께서 말씀을 입에 담아 주실 때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가 실어증에 걸린 기간은 기원전 593년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때인 586년까지 6-7년이었다.
“그러나 내가 너와 이야기할 그때에 너의 입을 열어 줄 터이니, 너는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예언자에게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에제 4-24장 유다와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선포
하느님의 심판 – 예루살렘의 멸망
부르심 때 받아먹은 두루마리에 적혀 있던 “비탄과 탄식과 한숨”은 이제 이스라엘의 운명으로 드러나게 되고, 상징적 행위를 통해 다가오는 비극적인 상황을 예고한다.
◇ 에제 4-5장 예루살렘을 향한 상징 행위
▶ 에제 4,1-17 예루살렘이 적에게 포위된다
예루살렘의 포위와 함락에 대한 하느님의 결정을 예시(4,1-3)하기 위해, 진흙 벽돌로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상황을 연출하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운명을 보여 주기 위해 왼쪽 옆구리로 390일, 오른쪽 옆구리로 40일 동안 누워서 지냅니다(4,4-8). 하루를 한해씩으로 쳐서 겪게 되는 유배의 햇수를 가리키고 있다.
음식과 물을 제한한 것은 유배 때 겪게 될 곤궁함을 보여주기 위해, 여섯 가지 곡식을 섞은 재료로 인분으로 불을 피워 빵을 구워 먹으라는 명을 받는다(4,9-17). 밭에 여러 가지 곡식을 섞어 뿌리는 것을 금지한 규정(레위 19,19)처럼 여러 가지 곡식을 섞어 만든 빵도 부정한 것인데 인분이나 쇠똥같은 부정한 땔감을 사용한 것은 부정의 극치를 보여준다.
▶ 에제 5,1-17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는 상징 행동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아 1/3은 성안에서 불로 태워 버리고, 1/3은 가져다가 성을 돌며 칼로 내려치고, 또 1/3은 바람에 날려 버린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멸망 할 때 맞게 될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 1/3은 성안에서 흑사병으로 죽거나 굶주림으로 스러져 가고, 1/3은 너의 성 둘레에서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 또 1/3은 유배나 유랑의 길을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 에제 6장-7장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심판 예언 – 종말 임박 예고
처참한 멸망의 운명을 맛보고야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 65회나 사용.
◇ 에제 8-11장 우상숭배와 불법의 현장 목격 –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간다
하느님의 영광은 성전을 떠나지만 유배자들에게 ‘새 마음‘을 약속하신다. 그분은 새로운 회복의 길도 일러준다.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 높은 언덕, 산봉우리, 푸른 나무 아래, 우거진 향엽나무 아래마다, 자기들의 온갖 우상에게 향기로운 제물을 바쳤으며(6,13),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어귀에 우상(8,5),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과 혐오스러운 짐승과 이스라엘 집안이 섬기는 온갖 우상들의 그림이 사방의 벽에 돌아가며 새겨져 있고(8,10), 탐무즈 신(8,14), 태양신(8,16)을 숭배하는 역겨운 짓을 저지르고 있다.
◇ 에제 12,1-28 유배를 예고하는 두 가지 상징적 행위
예루살렘의 멸망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유배 짐을 싸서 벽에 구멍을 내고 도시를 떠나는 시늉을 한다(12,1-16). 사람들 앞에서 떨며 빵을 먹고 불안과 걱정에 싸여 물을 마시는(12,17-20)것은 앞으로 반드시 닥쳐올 예루살렘의 운명을 보여준다.
◇ 에제 13-14장 거짓 예언자들과 하느님의 심판
거짓 평화를 부르짖는 예언자들을 비난(13,10). 막을 수 없는 하느님의 심판(14,12-23).
◇ 에제 15–23장 비유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묘사
이스라엘의 죄 :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광야의 여정을 할 때, 시나이 산에 이르러 시나이 계약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계약에 충실하고 율법을 잘 지키는 것, 그것은 십계명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말한다.
폭력과 불의가 난무하는 세상 – 예루살렘 백성의 현실묘사
이스라엘의 제후들은 백성들의 제물을 착취하고(22,6.25), 사제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짓밟고 거룩한 물건들을 더럽혔으며(22,26), 예언자들은 주님이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거짓 환시를 보았다 하고 속임수 점괘를 말하였다(22,28). 백성들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업신여기고, 이방인을 억압하며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였으며, 성윤리가 무너져 간음과 근친상간이 만연하였다(22,7-11). 처참한 멸망의 운명을 맛보고야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6,14) – 65회나 사용.
종말 임박 예고 : 예루살렘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곳에서 자행되는 ‘우상 숭배’ 때문(6,13)으로,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11,22-23). 하느님의 영광은 성전을 떠나지만 그분은 새로운 회복의 길도 일러준다. 예언자의 말씀의 성취와 그 임박성 – 예언자의 환시와 속담(12,21-28), 막을 수 없는 하느님의 심판(14,12-23), 쓸모없는 포도나무 같은 예루살렘(15,1-8),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은 딸의 비유 : 부정한 아내의 역사(16,1-63), 죄로 얼룩진 이스라엘의 반역의 역사(20,1-44), 방탕한 여자 오홀리바(예루살렘)과 오홀라(사마리아)는 정부들(아시리아, 이집트, 바빌론)의 손을 통해 심판하시리라고 묘사하고 있다(23,1-49).
▶ 쓸모없는 포도 덩굴의 비유 (15장).
▶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적 반성 –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은 딸의 비유(16장)과
죄로 얼룩진 이스라엘의 역사(20장). 방탕한 여자(23장)
레바논의 독수리와 향백나무의 비유 (17장) – 치드키야의 배반을 암시.
▶ 에제 18,1-32 하느님의 정의와 개인의 책임을 강조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리다‘(예레 31,29)는 속담이 더이상 효력이 없음을 선포. 예언자는 유배생활을 상징으로 보이면서, 지도자인 장로들과 거짓 예언자들의 잘못을 고발하면서 이 모든 죄의 책임은 개인이 지는 것이니 새 마음을 품고 새 뜻을 품으라고 권한다.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18,32).
하느님께서 조상들의 죄악 때문에 후손들의 미래를 제거하시는 부당한 분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살아온 삶에 따라 심판하시는 분이며, 회개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기회를 주시는 분이라고 선포한다. 어두운 심판의 예언조차 죽음이 아니라 삶을 지향하는 말씀이다.
▶ 암사자와 포도밭의 비유(19장) – 유다 임금들의 죽음을 애도하다
▶ 에제 20장 이스라엘 반항의 역사 –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적 반성
에제키엘을 당시 죄에 빠져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갔던 상황이 이미 이스라엘이 살아왔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 에제 21장 ‘칼’을 주제로 한 세가지 심판 –주님의 칼, 바빌론 임금의 칼, 암몬인을 치는 칼
예루살렘 백성의 현실묘사 (22장)
▶ 에제 24,1-27 냄비와 에제키엘의 아내의 죽음에 대한 기사 (24장)
에제키엘의 자기 아내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금하며(24,15-24),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 그들 역시 너무나 기가 막혀 울지도 못할 것임을 미리 보여 준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친 사람이 예루살렘성이 무너졌다(24,26)고 보고한다. 여기부터 심판 예고가 구원예고로 바뀐다.
유다 왕국은 B.C. 597년에 바빌론 군대에 의해 포위된다.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성전과 임금궁에 보관된 온갖 보물을 수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호야킨 임금과 그의 모후와 임금비들, 고관대작과 기술자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간다(1차 바빌론 유배). 네부카드네자르는 여호야킨 대신 그의 삼촌 치드키야를 임금으로 세운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 유다 왕국은 결국 패망하고(-587년) 네부카드네자르는 유다인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성전과 성벽을 완벽하게 허물었고 활동이 가능한 남자들은 모두 포로로 끌고 갔다(2차 바빌론 유배). 이때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체험을 한 시기다.
◈ 에제 25-32장 이웃나라에 대한 심판예고
이스라엘에 이어 주변에 있는 각 나라의 잘못에 대해서도 하느님의 처벌이 임한다. 지리적 순서에 따라 암몬, 모압, 에돔, 필리스티아(25장), 티로, 시돈(26-28장), 이집트에 관한 신탁(29-32장)이 나온다. 반바빌론 세력의 핵심 중의 하나였던 티로는 험준한 바윗섬 사이에 있어 난공불락을 자랑했다.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교만한 티로 역시 그것 때문에 멸망당하리라는 하느님의 심판말씀을 듣게 된다(26,1-28,19). 27장의 화려하던 티로의 멸망에 관한 신탁의 내용이 실현되지 않았다. 29,17-21에서는 신탁의 내용이 수정된다. 바빌론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게 티로 대신 이집트를 넘겨주리라고 한다. 이 사실은 예언자가 한 말이 후에 정정되기도 한다는 한 예이다. 동방의 패권국가로 유다가 끝까지 희망을 걸었던 이집트 역시 하느님의 손길에 황폐해지고 만다(29,1-32,32). 이 대목은 세계만방을 좌지우지하시는 하느님의 절대주권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믿고 그 힘을 마구 쓰는 나라는 하느님의 심판을 모면할 길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그 심판과 처벌은 모두 참 하느님을 바로 알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음을 알려준다(25,5; 26,6; 28,26; 32,15).
예언서의 최종 편집자들은 예언서의 앞․뒤나 역사성에 신경쓰지 않았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백성이 어떠한 것인지 그들의 신앙을 돕기 위해 예언서는 마지막에 편집되었다.
◈ 에제 33-48장 하느님의 구원선포
예루살렘의 멸망(-587년) 이후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겪게 된 고난이 그들이 범했던 죄의 결과임을 지적하면서, 하느님의 심판은 끝이 아니라 참다운 하느님의 백성공동체를 이루시려는 정화의 시작임을 선포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유배된 이스라엘 백성이 고향 땅으로 되돌아가게 하시고, 그 땅을 영원히 소유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윗 가문의 임금과 다시 영원한 계약을 맺으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당신의 거처와 성전을 두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 에제 33,1-20 파수꾼에 대한 예언
파수꾼으로서의 예언자의 소명 ; 회개와 개별 책임성 강조
공동체의 회복을 알리는 희망의 예언(에제 33,1-39,29)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돌아서라. 너희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33,11)
▶ 에제 33,21-22 예루살렘이 최종함락 된 후의 피난민의 도착
백성의 반응은 주님에게서 나온 말은 들으러 오지만 실천하지는 않는다(33,31).
◇ 구원에 대한 약속 (34-39장) – 새 마음을 통한 새 계약의 체결
하느님은 죄인이라고 해도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결국 하느님의 심판은 참다운 하느님의 백성공동체를 이루시려는 정화의 과정임을 깨우쳐 주신다.
▶ 에제 34,1-31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향한 심판 – 사제들에 대한 경고
하느님 친히 목자로 나서시어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에제 34,16)고 하신다.
▶ 에제 35,1 – 36,15 세이르의 산들을 거스른 신탁
에돔 산에는 재난을 선포하고 이스라엘 산위에는 구원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 에제 36,16-38 새로워지는 이스라엘 –정화, 화해 그리고 귀환에 관계되는 신탁
죄에 물들어 있던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고 새 마음과 새 영을 불어넣어 주고,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심으로 써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 주시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로 이끌어 주시고자 하신다.
▶ 에제 34,23-31 미래의 왕국
하느님은 이스라엘과 ‘평화의 계약’을 맺게 될 것인데(34,25), 그제야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있음을, 그리고 이스라엘 집안이 내 백성임을 알게 될 것이다(34,30).
▶ 에제 37,1-28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 나리라
에제키엘은 이스라엘이 새생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도록 지시받는다. 모든 것이 끝장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전하고 있다.
찢겨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재결합할 것이다(37,15-28)
▶ 에제 38-39장 이스라엘의 구원 약속 – 묵시문학적으로 표현.
마곡 왕국이 하느님에 의해 파멸되는 “마지막 때”에(38,8) 이스라엘은 모든 원수들에게서 승리를 거두고 완전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무기들을 땔감으로 쓰고, 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체들을 맹금과 들짐승에게 먹이로 내준다. 그리고 시체가 이스라엘 땅을 부정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시켜 일곱 달 동안 적군의 주검들을 찾아 땅에 묻게 한다.
◈ 새로운 공동체 (40-48장) – 새로운 성전에 관한 예언
에제키엘은 환시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전해 받고 새롭게 탄생될 공동체의 모습을 제시한다. 에제키엘은 예루살렘 함락된지 14년째인 -573년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보게 된다(43,7 참조). 이어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이끌어 갈 지도자들 – 사제와 레위인들, 제후들 – 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44-46장). 그들은 공정과 정의로 다스리게 될 것이다.
▶ 에제 47,1-48,35 성전에서 솟아 흐르는 물의 환시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구약에서 물이 솟아나는 샘은 생명력을 부여하는 하느님의 능력을 상징한다. 성전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샘물은 하느님이 생명의 근원이심을 입증해준다. 요한계 문헌들은 이 예언이 인류를 위해 희생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새로운 성전이며(요한 2,21), 그분의 옆구리로부터(요한 19,34) 영원한 생명의 물이 흐른다(요한 4,14). 요한 묵시록은 희생된 어린양의 천상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제시하고 있다(묵시 22,1-2). 이 성전은 매우 특별한 장소로서, 바로 이곳에서, 성전으로 돌아온 주님의 영광을(43,1-12) 찬미하는 전례가 모든 규정에 따라(40; 46장) 거행된다. 그리하여 성전은 이제부터 이 새로운 백성이 영위하는 삶의 진정한 중심이 된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 회복시켜 주신 새로운 땅이 열두 지파에게 주어진다. 하느님을 올바로 알고 바르게 섬길 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참 신앙이 바로 하느님께서 계시는 자리다. 그 신앙의 토대 위에 세워지는 도시의 이름은 “야훼 삼마”(=하느님께서 여기 계시다)이다(48,35).
에제키엘서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하느님 중심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참된 회심의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영광, 인간 개개인의 책임, 그리고 새이스라엘 정립을 강조. 비록 민족의 파멸을 예고하지만 하느님의 궁극적인 뜻은 미래에 있을 구원이며 이 사실을 선포.